중세의 성직자를 숨겨 준 비밀의 방 "프리스트 홀 : 사제의 구멍"


중세 잉글랜드, 다양한 갈들이 치열했고 잔인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던 이 시대, 부유한 유력 인사의 성이나 저택에 비밀의 방이나 숨겨진 탈출구가 있는 것은 평범한 일이었다.



이것은 집주인이 몸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습격 당하더라도 추격에서 도망 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이런 비밀 방이나 시렁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특히 오래된 카톨릭 가정은 더욱 심했다. 당시 탄압당했던 성직자들의 은닉 때문이었다.


- 메리 1세에 의해 개신교 박해


16세기는 종교 대립의 긴장이 높았던 시대였다.



유럽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기세를 확대하고 있던 개신교 세력으로 두 동강났고, 결국 헨리 8세의 전, 잉글랜드 성공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결별 하게되었다.


영국의 종교 개혁은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의 통치에도 계속되어져, 그는 그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새로운 신앙 형태를 도입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계승자 인 메리 1세는 이에 강력힌 반대하고 필사적으로 다시 잉글랜드를 카톨릭 교회의 권위로 복원하려 했다.




개신교 신앙을 포기하려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화형 당하고, 그녀는 블러디 메리(피의 메리)라고 불리게되었다.


▲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카톨릭 성직자 사냥


메리 1세의 뒤를 이은 이복 자매의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종교, 무역, 외교 정책을 가진 강하고 독립적 인 잉글랜드를 바라고 있었다.


교리를 느슨하게 개혁 한 잉글랜드 성공회를 부활시킨데다가, 카톨릭과 대부이던 교황의 전통을 계속하는 것도 강조했다.


▲ 2층에 설치 된 프리스트 홀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 시대, 반 카톨릭 정서가 괴상하게 높아져 교황은 엘리자베스를 이단자로 간주 왕위 박탈을 요구했다.


반란과 살인 미수가 계속되었고, 이에 성난 여왕은 카톨릭, 특히 성직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카톨릭 성직자는 영국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들을 숨겨준 사람도 엄중 처벌했다. 정보 제공자, 스파이, 성직자 사냥 네트워크가 잉글랜드의 카톨릭 성직자 사냥을 도왔다. 체포된 성직자들은 투옥, 고문 당하고 교수형되었다.


▲ 숨겨진 방이 큰 계단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것을 알 수있다.



- 성직자를 숨기기 위한 비밀의 방 "프리스트 홀"


체포, 처형을 피하기 위해 많은 성직자는 친척이나 교사의 모습으로 부유 한 카톨릭 가정에 숨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저택 안에는 "프리스트 홀"이라는 숨겨진 방이 만들어져, 비상시에 성직자들은 거기에 숨었다. 이 숨겨진 방은, 자주 벽난로와 가짜 벽, 계단 아래에 만들어져 일어나거나 돌아다니고 하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매우 좁은 경우가 많았다.



▲ 이 숨겨진 방은 가짜 벽난로 뒤에 만들어져 있었다. 다락방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만일의 사태때는 도망칠 수 있는 탈출구로 사용. 불길에 의해 검게 그을린 벽돌 등 세심하게 세공되어 있다.


▲ 2층의 한 구석에 만들어져 있는 작은 성직자의 방.


성직자 사냥꾼들은 저택에 발을 디뎌, 때로는 며칠 동안 용도 불명의 공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열심히 조사했다. 


그 중에는 조용히 숨 죽여 있던 성직자는 숨 쉬기도 전전 긍긍하면서, 그저 조용히 가만히 누워있었다. 이 지옥 같은 감금 상태 동안 음식과 음료도 부족하고, 화장실도 없었고, 성직자는 이 숨겨진 방에서 굶어 죽거나 산소 결핍으로 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