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스파이에서 대통령까지...놀라운 푸틴의 젊은 시절


냉전이 종결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러시아의 첩조 활동에 관한 보도는 지금도 미국의 미디어를 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실시 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민주당 전국 위원회(DNC)의 이메일을 해킹하거나, 기타의 방법에 의한 사이버 공격에 관여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푸틴은 미국과의 사이버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관여를 부정하고 있고....


그러나 동시에, 푸틴은 러시아 정보 기관의 "드문 인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그가 KGB 첩보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푸틴이 스파이 할동에 엄격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도 당연.


스파이로 젊은 시절을 보냈던 푸틴....그의 놀라운 이력을 보자.


▲ 10대 시절 푸틴은 "The shield and the sword"의 소설과 영화에 빠져있었다. 나치 전복을 도우는 용감한 소련의 스파이가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후 푸틴은 "1명의 간첩이 수천명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 푸틴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 졸업 논문은 국제법과 무역을 테마로 한 것이었다.



▲ 당초 법조계를 목표로하고 있었지만, 1975년 졸업과 동시에 푸틴은 KGB에 채용되었다.



▲ KGB 채용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푸틴은, 친구와 인근 조지아(그루지야) 레스토랑에 가서 호두 소스를 얹은 달고기 구이로 취업을 축하하는 축하주를 마셨다고 한다. 달콤한 리큐어를 마셨다고~~





▲ 그는 모스크바의 KGB 붉은기 대학에서 훈련을 받았다. 일단 푸틴 정권에서 요직에 취임, KGB에서 훈련을 함께 한 세르게이 이바노프(Sergei ivanov)는 베테랑 스파이의 교훈 중에는 거의 쓸모없는 것도 있었다고..



▲ 푸틴은 1970년대 당시 KGB 의장 유리 안드로포프가 도입 한 "외부인 집단(cohort of outsiders)"에 소속되어 있었다. 안드로포프의 목표는 젊고 더 비판적인 직원을 채용하고 KGB 조직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 푸틴의 반생을 그린 스티브 리 마이어스의 저서 "The New Tsar"에 따르면, 푸틴의 스파이 경력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몇 년은 어두운 사무실에서 연로 한 직원에 둘러싸여 "사무 처리에 쫓기는 자신의 방도 없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 그는 샹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삼엄 한 경비의 제401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했다. 간부 후보생은 여기에서 첩보 전술과 심문 기술을 배우고 트레이닝을 받고있었다. 1976년 푸틴은 중위로 진급...



▲ 푸틴의 임무는 스파이 방지 활동과 외국인의 감시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었고, 마이어스에 따르면, 반체제 인사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KGB의 제5총국에서 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 1985년 푸틴은 번역자로 신분을 속여, 독일 드레스덴에 잠입했다. 피오나 힐과 클리프 가디는 저서 "푸틴의 세계"에서 당시 푸틴의 임무는 동독 공산당과 동독 정보 기관 슈타지에서 요직에 있는 직원을 초대하고, 기술적 인 기밀 정보를 훔쳐, 동독을 방문하는 서방 인물에 접촉하거나 서독으로 밀입국하는 것이었다고...



▲ 저자 두 사람은 "이러한 임무 중에서, 푸틴이 드레스덴에서 실제 임무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그 전부다"라고 대답...



▲ 193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어느 날 드레스덴 KGB의 거점이 군중에게 습격당했다. 푸틴은 약탈자를 위협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권총을 난사했다고...




▲ 1990년대에 들어서까지 푸틴은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국제 사회에서 소련이 힘을 잃은 시기에 KGB에 재적하고 있던 것은, 그의 세계관의 형성에 한몫했다고 생각되고 있다.



▲ "연방의 몰락은 분명했다"라고 한 푸틴은, 그가 해외에서 임무를 맡고 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 그리고 1991년 푸틴은 KGB를 그만두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강경파에 의한 정변 중이었을 때다. 이후 옐친 정권에서는 공직에 종사, 옐친의 사임 후 후임자가 되었고, 2000년에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