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채널 e : 영웅과 역적 사이 편 >>
왜국에서 조선으로 나라를 귀화한 장수 김충선 (=사야가)
그가 조선으로 가져온것은 조총이였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 선조30년
김충선은 손시로(孫時老) 등 항복한 왜장과 함께 의령(宜寧)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에 왜적 만여 명은 산음(山陰)에서 곧바로 의령으로 내려가 정진(鼎津)을 반쯤 건너고 있었다. 이때, 김충선은 명나라 병사 수십 명과 전사(戰士) 등과 합세해 왜적에게 맞섰다. 조선의 군병은 기세를 떨치며 싸웠으나, 곧 왜적의 습격에 빠져들고 말았다. 왜군이 마병(馬兵)으로 추격하여 포위를 하자, 조선 군병과 명나라 병사가 함께 포위된 위기 속에서 포위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데에는 항왜들의 힘이 컸다. 당시의 전투에서 김충선도 적의 수급(首級)을 베었던 것이 확인된다.
1627년 (정묘호란) - 인조5년
김충선은 토병 한응변(韓應卞) 등과 함께 자원군으로 나와 전투에 임하였고, 이로 인해 상당직(相當職)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66세의 노구를 이끌고 전투장에 나와 광주(廣州) 쌍령(雙嶺)에서 청나라 병사를 무찔렀다. 22세에 조선에 귀화해 온 이후부터 66세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전쟁터에 나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이다.